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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가로지르다



경험의 제자 / Discepolo della sperientia



Published: Wed, 01 Nov 2017 07:20:44 +0900

 



Empathy vs. Sympathy

Wed, 17 May 2017 21:11: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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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Fri, 17 Mar 2017 15:56:59 +0900

봄밤                                              ---- 김수영 (1957)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Sat, 04 Mar 2017 22:34:57 +0900

* 2012년에 번역한 책 《푸른 눈 갈색 눈》에 쓴 옮긴이 후기와 해설을 옮겨 놓는다. 지금은 그때와 생각이 달라진 대목 (예를 들면 한겨레신문 칼럼으로 쓴 아래 글 '역지사지는 가능한가'가 그때와 달라진 요즘의 생각) 도 있지만 어쨌든. 계속 관심이 가는 주제라서 다른 맥락에 옮겨놓고 보기 위해 블로그 게재.-------------------------------------------------------------------------------------------------------------------------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옮긴이 후기와 해설 지금 당신의 손에 이 책이 들려 있게 된 사연은 열한 살 소녀가 서툰 솜씨로 그린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도화지의 위쪽 절반에는 주먹만 한 글씨로 ‘다른 나라 사람을 차별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다. 그 아래엔 덩치 큰 아이 세 명이 나란히 서서 혼자 동떨어진 작은 아이를 향해 소리친다. “저리 가! 너는 우리랑 달라!”작은 아이는 이 세 명에게 맞서는 모양새로 이렇게 항변한다. “아니야! 나는 너희와 같아.”작은 아이의 모델이자 그림을 그린 소녀는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의 아이다. 내가 이 그림을 본 것은 2010년 가을, 우연한 계기로 비영리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기 시작한 직후였다. 단체 연구진이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자료 수집을 이미 마친 프로젝트에 뒤늦게 합류한 뒤 그림을 그린 아이의 동영상 인터뷰도 보게 되었는데, 또랑또랑한 눈빛의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너는 우리랑 다르다고 막 얘기하고… 어렸을 때요. 제가 발음이 많이 이상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애들이 (나더러) ‘너 우리랑 같은 사람 아니지? 저리 가’라고 하고, 만날 놀리고 그랬는데… (학교에서) 다문화가정인 사람 손들라고 만날 그러잖아요. 그럼 저밖에 손드는 애가 없잖아요. 그러면 애들이 ‘쟤 다문화가정인가 봐’ 어쩌고저쩌고해요.”이 아이는 “똑같은 사람이고 말만 다를 뿐인데,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은 필요도 없고(듣기) 싫다”고 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이라는 법률도 있고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기에 다문화가 가치중립적 개념으로 쓰이고 있으려니 했던 나로서는 다소 의외였다.그러고서 며칠 뒤에는 단체 활동가들에게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동아리 활동을 지원했던 경험을 듣게 되었다. 동아리 아이들이 직접 같은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다문화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평소 다문화가정의 아동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두 개만 적어보라’는 주관식 질문이 있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이랬다. “따돌림, 더럽다, 외모, 의사소통, 아프리카, 초콜릿, 짜장면, 흑인, 불행…….” 이 학교 학생 중엔 외모로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다문화가정 아이는 없다고 했다. 설문에 응답한 학생들이 다문화가정 아이를 직접 본 적이 있건 없건 간에 ‘다문화’라는 개념 자체에 따라붙는 편견의 리스트가 놀라웠다.내가 차별과 편견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두 사례를 접하고 난 뒤부터다. 말투나 피부색처럼 단순한 특징으로 ‘너는 다르다’라고 판단하고 이에 근거해 쉽게 차별하며 완강한 편견을 갖는 마음의 구조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사방에서 다문화 사회를 말하지만, 한국 사회는 정말 다양해지고 있는 걸까? 의문을 안고 자료를 뒤지던 중, 이 책의 주인공인 제인 엘리어트의 실험을 접하게 되었다. 엘리어트의 실험에서 핵심 주제인 ‘차별당하는 [...]



그리움을 만지다

Sun, 12 Feb 2017 23:44:27 +0900

전시된 뜨개작품의 톡톡한 재질을 만져도 보고 부드러운 표면을 쓰다듬어도 보고 대형 뜨개러그 위에 앉아도 본다. 목도리와 가디건, 지갑, 가방을 뜨개질로 만든 엄마들이 이 작품을 누구한테 왜 주고 싶은지 쓴 사연도 찬찬히 읽어본다. 그렇게 걷다보면 "옆도 뒤도 돌아보기 무서웠던 때 뜨개바늘을 잡고 직진만 했던" 엄마들이 그 보들보들한 목도리와 방석, 컵받침 등에 촘촘히 녹여 넣은 고통, 그리움, 애달픔이 온 몸으로 전해져온다. 보드라운 방석들을 쓰다듬다가 옆 벽면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속마음 말들을 읽다 보면, 울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다. 세월호 엄마들의 뜨개 전시 '그리움을 만지다' (~19일, 서울시민청 갤러리) 는 컵받침 2800개가 별처럼 공중에 걸개로 떠 있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뜨개작품들로 장식되어 포근하지만, 그렇게 몸의 감각을 모두 사용해 경험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와락 눈물이 터질 수 있으니 꼭 손수건을 준비해서 가시길. sewol1.jpgsewol2.jpgsewol3.jpgsewol4.jpgsewol5.jpgsewol6.jpgsewol7.jpg # 내가 간 날에는 엄마들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 인사를 할 때 엄마들이 "2학년 O반 OO 엄마입니다"라고만 소개하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세월호 유족이라는 정체성이 엄마들의 삶을 무겁게 짖눌러 버렸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개인 OOO씨로서 겪는 삶의 다른 순간들도 많을텐데, 오늘은 아이들보다는 엄마들의 시간인데, 엄마들도 이름이 있으니 OO엄마 OOO입니다,라고 소개하시면 더 좋았을 것을.... 아니나 다를까, 사회를 보시던 정혜신 박사님이 내 맘을 읽기라도 하신 듯 이건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면서 말씀하신다. "여러분, 혹시 화법의 차이를 눈치채셨나요? 엄마들이 말을 할 때는 주어가 늘 '우리 엄마들은' '저희들은'으로 시작해요. 개인 이야기를 하는 게 낯설어서 그러시기도 할텐데요...오늘은 '저희들' 말고 '나는'이라고 말씀하시고, 대변인같은 외교적 이야기 말고 (웃음) 자기 이야기만 해주세요." 엄마들은 여전히 '나는' 이라고 말하기를 어색해 하셨다. 그러면서 조금씩 풀려나온 이야기들. 유족들이 밥먹으면 먹는다고 손가락질, 웃으면 웃는다고 손가락질하는 주변의 시선이 힘들었다. 사람이 늘 울고만 있는 것은 아닌데 유족의 모습은 우는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꾸 스스로를 속이게 되더라. 치유공간 이웃은 그런 남들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처음으로 편하게 마음을 부려놓을 수 있었던 공간이다...힘든 일에 대처하는 방식이 가족 간에도 서로 달라서 힘이 들 때가 많다. 나는 나가서 미친 듯 활동해야 숨통이 트이는데 아이 아빠는 아예 나가질 않는다. 떠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가족 간에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어야 치유가 된다는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끼리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다. 서로 겁이 나서 아직도 그렇게 안 된다.... 남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 해야 하는데 못해서 마음에 걸린다는 한 엄마에게 정혜신 박사가 물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잠깐 뜸을 들인 뒤 그 엄마가 대답했다. "내가 아프지 않고 잘 사는 모습 보여주는 거죠..." 또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자식을 잃은 내 엄마에게 10년 전 내가 했던 말이다. 남은 생을 '아들을 잃은 엄마'로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프지 말고 엄마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으면 뭐든 하면서 잘 사시는 걸 보고 싶다고. 그리고 오늘 [...]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

Mon, 06 Feb 2017 01:01:54 +0900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을 다녀온 지 6일째. 틈틈이 해온 여행의 뒷정리를 오늘에야 마쳤다. 내 스마트폰으로 찍은 다른 사람들 사진을 보내주고, 등산복과 옷가지들, 배낭, 신발을 재질의 속성에 맞게 세탁하고 발수제를 뿌려 정리해두고, 빌려온 침낭과 배낭을 탈탈 털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돌려줬다. 뒷정리는 내 몸도 예외가 아니어서, 산에선 아무렇지도 않던 허리와 다리가 한국에 돌아온 뒤에야 아프고 당긴다. 매일 스트레칭을 하며 주의 깊게 지켜보는 중이다. 마음의 뒷정리도 필요할까. 별 생각이 없는 상태로 걸어서 딱히 느낀 점도, 깨달은 점도 없다. 혼자 걸었던 시간도 많았지만 내 마음이 그리 수다스럽지 않아서 되레 홀가분하니 좋았다. 그래도 가기 전에 고민스러웠던 선택의 방향 하나를 정했고 돌아와서 결론을 상대에게도 전했으니, 마음이 저 혼자 분주히 일을 하기는 한 모양이다. 1월 20~30일 네팔 여행. 그 중 6일을 히말라야에서 걸었다. 해발고도 1410m인 샤브루베시를 출발해 4200m의 초원지대인 랑시샤 카르카까지 다녀왔으니 2790m를 나흘간 올라갔다가 이틀 만에 내려왔다.  고산증은 겪지 않았고 추위도 예상만큼은 아니었다. 밤엔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갔지만 뜨거운 물을 담은 물통을 안고 핫팩 하나를 붙이고 겨울침낭에 들어가면 따뜻했다. 낮엔 쉴 때를 제외하곤 패딩을 거의 입지 않을 만큼 화창했다. 되레 트레킹을 며칠 더 하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짧아서 아쉬웠던 여행이었다. 나이와 직업이 모두 다른 여성들이 모여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함께 걸었다.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 캠페인 진행자와 여성들끼리의 여행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 주최한 여행길이었다. 각자 알아서 카트만두에 모인 뒤 시작되는 여행. 2년 전 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사라져 버린 랑탕을 지나는 트레킹 코스를 일부러 골랐다. ‘기억의 시간을 함께 걷다’라는 주제로,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이 땅 아래 묻혀 있는 곳이지만 다시 살아가기 위해 삶을 시작한 사람들 또한 있는 곳” “아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길”을 함께 걸었다. 예상할 수 없었던 사고로 먼저 떠나버린 사람들을 기억하며, 어쩔 수 없이 세월호를 떠올리며 여행의 마지막 날엔 카트만두의 티벳사원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는 촛불을 켜기도 했다. 매일 오전 8시에 출발해 오후 5시 정도까지 걸었는데 얼음과 눈을 밟은 적은 거의 없고 거개가 흙먼지길이었다.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 펼쳐진 초원지대가 나는 가장 좋았다. 숙소가 있던 걍진곰파 (해발 3830m)에서 랑시샤 카르카 (4200m)를 왕복하며 약 8시간 반 걸었다. 산의 정상을 오르는 등반 (mountaineering)이 아니라 산을 바라보며 산길을 따라 걷는 트레킹 (trekking)의 이미지에 가장 잘 부합한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설산을 바라보며 대평원 같은 느낌의 대지를 하염없이 걸어갈 수 있어서, 때로 홀로 걸으며 한 점에 불과한 내 존재의 사소함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어서 나는 이 길이 좋았다. 큰 점프 대신 작은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듯 땅을 꾹꾹 찍어 밟으며, 돌아가서도 이렇게 한 발씩 천천히 옮기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고산지대보다 트레킹 출발 지점과 카트만두 사이 깎아지른 계곡 위의 비포장길을 지프를 타고 구불구불 오고 갈 때가 더 아찔했다. 안전벨트도 고장났고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길에서 차바퀴는 휙휙 미끄러지고, 굴러 떨어지는 것도 순[...]



"여성의 일, 새로고침" 출간

Thu, 05 Jan 2017 23:31:38 +0900

저자로 이름을 올린 네번 째 책이 나왔다.

저자로 참여했지만 사실은 화자(?)였던 책. 협동조합 롤링다이스가 진행한 같은 제목의 기획 대담에 참여했는데 이렇게 아담한 책으로 묶여 나왔다.

글로 쓴다면 자기검열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았을 내용들도 말로 술술 불어버려서 책에 실린 내 말을 보니 좀 낯뜨겁긴 하다....나 말고 다른 참여자들의 대담도 이번에 읽게 되었는데, 처한 삶의 현장은 전부 달라도 일터에서 분투하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내고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여성들에 대해 '동료애' 같은 게 느껴진다. 원칙적인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본다면 타협적이고 못마땅하게 읽힐 소지도 있을 듯하나, 이론보다는 현실에서 직접 싸워보고 패배하고 다시 도전해보며 뭔가를 바꿔 본 경험들이 더 소중하다. 일하며 갈등하는 여성들에겐 한번씩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 (알라딘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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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선취(先取)하기

Wed, 04 Jan 2017 18:01:06 +0900

직장을 그만둔 뒤 만나는 사람들이 "그래서 이제 뭐할 거야?" 라고 물을 때마다 나도 모르겠다고 답하는 나날들. 가고 싶은 모호한 방향은 있고 그리로 가기 위해 뭘 할지 뜬구름 잡는 공상은 중구난방 피어나지만, 구체적인 '무엇'은 나도 모르겠다. 해볼 수 있겠다 싶은 걸 조금씩 실험해보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히말라야 트레킹 다녀온 뒤에 생각하자고 유보해둔 상태다. 대신 '무엇' 말고 '어떻게'는 자주 생각한다. 불확실함에 대처하고 내 삶의 틀을 다시 세우는 과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 지금 당장 내게는 '무엇'보다 그 '어떻게'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정한 첫 번째 '어떻게'는 매일의 의례를 만든 것이다.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무수한 사회에서 사람이 성년이 되는 전환의 시기에 겪는 위험들을 다스리려 통과의례를 마련하듯, 불확실한 전환의 시기에 나를 지탱해주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불안을 다루는 몸과 마음의 ‘근력’ 높이기를 목적으로,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되는 매일의 시시한 일 두 개를 정했다. 새해 들어 오늘 나흘째니 작심삼일은 면했고 ㅋ. 더불어 생각하는 또 하나의 '어떻게'는 미래를 선취(先取)하기, 원하는 삶의 모습을 떠올려보고 그것 중 가능한 것들은 현재로 들여와서 지금 살아보기다. 독일의 젊은 철학자 나탈리 크납은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방법 중 하나로 '미래를 기준으로 현재를 생각하기'를 권고한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를 상상하고, 그러고 나서 그렇게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곧장 실천해보자는 제안이다. 미래를 기분 좋게 현재로 들여와서 삶의 각 영역을 하나하나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탈바꿈시켜가자는 것.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공동의 책임이 있으므로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해 저마다 자신의 전망을 만드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먼저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함으로써 우리의 능력으로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희망은 벌써 오래전 부터 여기에 존재하는 미래에 사로잡히는 것, 그것을 통해 현재를 비로소 제대로 향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최근에 읽은 엄기호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철학자 이종영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이야기할 때 혁명을 두 단계로 나눠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건으로서의 혁명. 그리고 두 번째는 혁명의 판타지가 붕괴하고 난 뒤 '혁명의 실제 속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혁명', 즉 과정으로서의 혁명이다. 앞의 혁명을 혁명 1, 뒤의 혁명을 혁명 2라고 부른다면 시간 순서로 1은 2에 앞선다. 그러나 1이 혁명이기 위해서도, 그리고 뒤이어 혁명 2가 나타나기 위해서도 "혁명 2가 혁명 1에 앞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1에 앞서는 2의 예로 이종영은 이스라엘의 키부츠, 미국의 아미시 공동체, 노동자 평의회 등을 거론한다. 혁명 1에 선행하는 혁명 2의 과정 속에서 보편적 개인들이 탄생한다. 이 보편적 개인들은 물론 '섬'과 같은 존재이지만 이 섬들에 기반을 두고 혁명 2가 지속되고 혁명 1의 계기가 만들어진다. 혁명 1이 일어난 뒤 잇따라 혁명 2를 맞이하고 일으키려면 그 전에 미리 부분적으로라도 혁명 2를 살아갈 주체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 운동에[...]



Liminality

Sat, 31 Dec 2016 15:05:14 +0900

올해 내게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다가 오래 전 인류학 수업 때 들은 liminality 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의 지대. 삶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기. 정해진 것 없이 모호하고 불투명한 시‧공간의 지대. 오래 전 수업시간에는 성년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의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의 하나로 배웠지만,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고민을 하던 당시의 내겐 스스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은유로 읽혀서 머릿속에 오래 남았나 보다. 다시 올해 약간 갑작스럽게 전환의 시기에 처하게 되면서, 삶의 어느 단계에서든 의도하지 않아도 경계의 지대를 지나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런 liminality의 상황에 처할 때만큼 삶은 ‘과정’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때가 없다. 더불어 오래 전 갈급한 마음으로 찾아 읽고 마음에 새기던 책들을 떠올린다. 조셉 캠벨이 신화적 상징의 의미를 캐고 탐구하여 보여주었던 영웅의 여정에서 문턱을 넘는 단계. 이 역시 liminality다. 더 이상 뒤로 돌아갈 수는 없고, 앞은 세계의 온갖 신화들에서도 가장 많은 위험과 모험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유동적인 세계다. 그렇게 문턱을 넘어 기이한 괴물들이 출몰하며 어둡고 흔들리는 세계로, 고래의 뱃속으로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따라 배우려 애쓰던 그 시간을 다른 결로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온전히 나로 살아야 하는 시간. 뚜렷한 일도, 계획도 없이 그저 막막한 심정으로 지내다 일단 매일 꼭 해야 할 일 두 개를 정했다. 하루키가 매일 달리기를 하며 되뇌었다던 말마나따나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 하찮고 사소한 일들이다. 그러나 테세우스가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던 단서가 보잘 것 없지만 더 없이 소중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였듯, 매일의 시시한 과제가 내가 스스로의 길을 찾아갈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워줄 것이라 믿는다. 새해엔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도, 만나는 사람도, 어쩌면 사는 곳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결심보다는 그런 변화에 의지하여 살아가려 한다. 내게 허용된 시간이 얼마일지도 알 수 없고 점점 더 삶이 우연이 되어버리는 세계. 담담히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며 어쨌든 내 인생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자고 생각한다.   [...]



지리산 일출

Thu, 22 Dec 2016 23:59:47 +0900

12월 15, 16일 지리산 종주.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을 선명하게 보았다. 자꾸 보면 좋은 기운이 생기지 않을까 하여 블로그에 걸어놓는다. 15일 백무동행 심야버스를 타고 출발. 16일 새벽 4시40분쯤 산행 시작. 장터목 -> 천왕봉 -> 장터목 -> 세석 (1박) -> 촛대봉 일출 -> 세석 -> 벽소령 -> 음정의 코스. 일출 사진보다 나는 이게 더 좋다. 수채화로 그린 듯한 이 자연의 색감이란! 날씨가 추운 걸 제외하면 워낙 쨍하니 맑아서 시야가 더 넓어져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지리산 종주는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도 그렇고 이번에도, 나는 직장을 그만둔 뒤에 지리산에 가는구나. 우연치고는 참…7년 전에 그랬듯 이번에도 지리산의 영기가 앞으로의 나를 이끌어주겠지. 첫 번째 종주 후 블로그에 끼적인 메모를 보니 그 후 7년간 나는 당시 계획했던 대로 살지 않았다. 불과 6,7년도 예측할 수 없는데 계획따위 다 무슨 소용이람. 방향만 잊어버리지 말고 지금 당장 가장 최선인 것에 몰두하면 된다. 친구 L모씨 말마따나 인생 전체로는 되는대로.    지리산에 함께 간 친구들의 배려를 잊지 말 것. 한 친구는 지리산 종주를 스무 번 가까이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스틱도 없이 심지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 험한 길을 휙휙 다닐 정도로 '산신령'급들인데, 늘 한 사람은 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며 내 상태를 살피고, 내가 힘이 들어 멈춰서면 같이 서서 기다려주고, 어려운 길을 만나면 건너는 방법을 알려줬다. 식사 시간 전 구간을 걸을 때면 다른 두 명은 먼저 내려가서 식사 준비를 시작, 늦게 오는 사람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해줬다. 내 음식을 자기 배낭으로 가져가 짊어져 준 친구는 마지막 내리막길 임도에서 발톱이 아파 고생하던 나와 보조를 맞춰 걸어주기도 했다. 천천히 걷느라 따분했을 텐데... 착한 친구들. 같이 산에 다니며 늙어갈 착한 친구들이 있다니, 복이다. [...]



성장

Tue, 13 Dec 2016 23:56:24 +0900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 속에 있는 동안에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사건이 삶에 더해질 때마다 줄거리를 계속 수정할 뿐이다. 길을 바꾼 사람들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여기는 대신 그렇게 이야기를 고쳐 쓰며 열린 태도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곧게 뻗은 직선형 계단 대신 빙빙 도는 나선형 계단에 올라 거듭되는 부침(浮沈)을 긍정하면서도 점점 나아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는 냉소를 거부하고 계속 성장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성인의 삶에 ‘성장’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릴지 몰라도, 그렇다. 길을 바꾼 우리는 계속 자라고 싶은 사람들이다.- 내 책 ‘내 인생이다’ 에필로그에 쓴 마지막 문단.# 지난달 말일자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만두기 이전과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르고 눈앞을 어지럽히던 희뿌연 먼지가 이제 조금씩 가라앉으려 한다. 맨얼굴의 적나라한 대면이 두렵지만 그것대로 맞이하고자 한다.먼지 가라앉히기에 도움이 될까 하여 블로그에 ‘성장’이라는 폴더를 만들었다. 이 나이에 성장이라니...하지만 내 책 에필로그에 내가 쓴 말처럼,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 나는 계속 자라고 싶은 사람이다. 회사를 의도치 않게 그만둔 것도 내가 쓰던 삶의 이야기에 새로운 사건이 더해진 것일 뿐. 이제 나는 줄거리를 어떻게 고쳐 쓸지 생각해야 하는 시간.# 잘 다니던 직장을 왜 그만두었느냐고 누가 물으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자세히 설명하기 곤란한 상황이기도 했고...무엇을 하려고 그만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어서 그만두었다는 사실이 내 인생의 실패를 증명해주는 것만 같아 한동안 괴로웠다. 그런 내게 존경하는 어른이 들려준 성경의 한 구절.(예수가 열두 제자를 파견하는 대목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마르코 복음 6장 10~13절)그 고장에서 너희를 받아들이고 너희 말을 들을 때까지 계속 머물러 끝까지 노력하라고 하지 않았다. 발밑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떠나라, 그게 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러니 떠나도 된다...혼자 속을 끓이다 찾아가서 하소연하던 내게 그 어른이 "맞서고 버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며 들려준 말씀이다.낯선 사건과 함께 찾아온 분노와 슬픔과 부끄러움 등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를 겨우 빠져나오고 발밑의 먼지를 털고 떠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스스로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들, 또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거의 본능처럼 저절로 보이는 반응, 나라는 사람이 이끌려가듯 취한 선택. 그런 것들을 통해 확인하게 된 나 자신이 그다지 싫지는 않다. 그러면 되었다.# 사무실 짐을 정리해 차에 실어둔 박스 3개를 옮겨야 하는데 박스를 차에 싣다가 허리를 살짝 삐끗하기도 했고, 짐 카트를 빌리러 갈 때마다 경비실 아저씨가 안 계셔서 여태 못했다. 오늘도 갔더니 안 계신다. 이를 어쩐다, 내일 할까 하다가, 내가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지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