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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경제학도가 풀어 놓는 일상의 경제 경영 이야기



Published: Tue, 31 May 2016 11:48:08 +0900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획기적인 방법

Wed, 08 Oct 2008 21:24:27 +0900

임금수준의 결정
고전적인 경제이론의 의하면 임금은 노동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생산성이 높으면 임금 역시 높다라는 의미죠. 바꾸어 말하면 생산에 얼마 만큼의 기여를 했는가에 의해서 임금수준이 결정된다는 의미입니다. 얼핏 보면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실체를 뜯어보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왜냐면 생산성을 기준으로 임금이 결정된다면 당연 생산성이 높은 사람의 임금수준이 높을 것입니다. 또한 생산성으로 임금이 책정되었기 때문에 다른 직장에 가더라도 현직장에서의 임금수준과 비슷한 처우를 받을수 있기 때문에 현재 본인의 직장에 대한 애착심은 그 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세계는 이처럼 생산성에 의해서만 임금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기업은 좀더 유능한 인재들을 모집하고 그들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고, 이들을 기업내 묶어두기 위해서 경쟁기업보다 높은 임금수준을 책정하기 때문입니다.
(image)

신하들의 임금수준 책정을 골몰히 고민하는 정조임금 :D


그렇다면 높은 임금은 근로자를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농땡이를 줄여줄 것입니다. 왜냐? 근무태만으로 회사에서 잘려 나간다면 이것으로 잃는 기회비용은 너무나 가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국내 최고의 임금수준을 자랑하는 A 그룹에 근무하는 근로자가 한순간의 잘못으로 인해 권고사직을 당한다면 분명 그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지 못한 경쟁그룹으로 이직해야 할 것이므로 현재의 자리에서 짤리지 않게 매우 열심히 일을 할 것이란 것은 뻔할 뻔자죠.

즉 이말은 노동생산성에 의해 임금수준이 결정되는 것이아니라 거꾸로 임금수준에 의해 노동생산성이 결정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효임금과 퇴출제도
실효임금(efficiency wage)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말그대로 효율적인 임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농땡이를 치고자 하는 인센티브를 제거하기 위해 시장경쟁임금에다 프리미엄을 얹은 임금을 더한 것을 의미합니다. 프리미엄을 얹은 임금이란 것은 근로자가 현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려는 인센티브를 주기 위한 것으로 최소한의 추가 금액입니다. 이런 프리미엄임금이 높으면 높을수록 근무태만이나 태업등은 줄어들겠지요.

실효임금 = 시장에서의 경쟁임금 + 프리미엄을 얹은 임금

이런 실효임금과 부정부패와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나를 갸우뚱 하실 분들이 있으실겁니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부정부패의 오랜 병폐와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미디어를 통해 아주 흔하게 접할수 있는 것이 바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나 뇌물수수입니다. 강력한 실효임금과 퇴출제도[각주:1]가 마련된다면 임기동안 한탕해서 한밑천 잡아보려는 비도덕적인 한탕주의는 사라지지 않을까요?

홍콩과 싱가포르의 실효임금/퇴출제도 성공사례
실제로 홍콩이나 싱카포르의 경우 성공사례로 이를 입증하고 있기도 합니다. 국제 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부패지수에서 상위( 싱가포르 5위, 홍콩 15위)에 랭크[각주:2]되어  있던 이들 두나라의 부패가 근절할 수 있었던 중추절 역할을 했던 기관이 바로 부패방지청이었습니다.

이런 부패방지청의 요원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민간기업 못지 않게 높았던 연봉과 처우(장기휴가, 초저금리 주택자금융자, 파격적 연금혜택)때문이었습니다. 이와 아울러 농땡이나 직권의 남용이 의심되면 가차없이 해고할 수 있는 시스템적인 제도가 합쳐지면서  청렴한 공직사회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서가 마련되었고 이를 통해 청렴한 국가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방법
(image)
우리 나라의 경우 국회의원의 경우, 상당한 수준의 임금수준과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나 직권남용의 인센티브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는 실효임금은 높지만 이를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닌말로 3족을 멸할순 없어도 극회의원직의 중도하차는 물론이고, 향후 몇년안에 총선에 출마할 수 없도록 강력한 규정을 마련하고 시행 한다면 국회의원의 부정부패와 직권남용에 대한 기사는 좀 더 줄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부정부패의 사슬이 끊어지는 그날을 고대해 봅니다.




사치품에 대한 세금은 누가 부담할까?

Wed, 13 Feb 2008 23:03:10 +0900

세금의 공평성을 평가하는 핵심 요소로 조세귀착을 꼽는다. 말그대로 세금을 부담하는 주체가 누구냐를 따지는 것. 세금이 과연 공정하게 거둬들여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세금 부담에 대한 공평성을 우선 체크해보야  할 것이다. 흔히들 사치품에 부과되는 세금은 이런 세금의 수직적 공평성을 확보해주고 부의 재분배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치품에 대한 세금은 공평할까?


결론적으로만 따지고 보면 공평하지 못하다. 정부로부터 세금을 고지 받은 사람과 실제 그 세금을 부담하는 사람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가지 측면을 끄집어 내어 이론을 전개하면 얼추 50%는 경제학자라는 말이 있다. 세금의 경우도 이런  수요와 공급의 측면을 고려하여 설명(^^)하자면 이 둘은 서로  균형가격[각주:1]의 변화를 가져올만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image)

밍크코트의 재료를 제공(?)하는 밍크는 실제로 이렇게 깨물어주고 싶을만큼 귀엽다.;;


예를 들면 고가의 밍크코트에 세금이 부과 될 경우, 밍크코트를 구매하려던 구매자는 밍크코트 대신 다른 사치품을 구매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밍크코트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판매량 역시 감소할 것이다. 판매량 감소로 재고물품이 쌓이게 되면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밍크코트의 가격은 하락하게 된다.

즉 균형가격이 하락한 셈이다. 세금 부과후 이윤도 감소하게 되어 밍크코트 제조의 수익성이 낮아졌으므로 투자자들은 새로운 밍크코트 공장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자신들의 재산을 주택이나 다른 업종에 투자하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공장이 줄어들게 되면 밍크코트의 공급이 감소하고,이를 제조하는 근로자에 대한 수요 역시 감소한다. 이는 곧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밍크코트에 대한 세금의 부과는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의 부담이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조세의 간접효과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끈끈이 효과(flypaper theory)[각주:2]라는 개념이 있다.

조세 부담이 법률에 정해진 사람에게 귀착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
을 비꼬는 것을 의미하는 이론으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치품에 대한 과세가 부유층이 전적으로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이 대표적이다.

더군다나 실제로 사치품은 가격에 대한 수요가 매우 탄력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세는 효율적이지도 공평하지도 않다는 것이 경제학자들 사이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1. 수요와 공급의 메카니즘에 의해 결정된 가격으로 균형점을 이룬 가격지점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2. 조세의 부담은 마치 파리가 끈끈이에 붙는 것처럼 처음 닿은 곳에 붙는다는 것으로 이런 가정이 반드시 들어 맞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영화 더게임으로 이해하는 수익과 위험.

Tue, 12 Feb 2008 23:21:00 +0900

어느날 갑자기 어느 한 늙은이가 당신에게 다가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면?

1.여자 혹은 남자중 하나의 성별을 선택한다.
2.서로 번갈아 가면서 숫자를 제시한다.
3.그 제시한 숫자로 만들어진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4.전화를 걸어서 본인이 선택한 성별(여자 혹은 남자)이 전화를 받으면 게임에서 승리.


내가 게임에서 승리하면 난 그 노인이 가진 엄청난 돈(30억)을 가지게 되고, 내가 패하면 내 젊은 몸과 다 죽어가는 노인의 병든 몸과 교환한다.

당신이라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image)

이 허무맹랑한 게임의 실체는 더 게임이라는 영화에서 신하균과 변희봉사이에서 벌어진 실제 게임의 내용이다. 이 게임은 제로섬게임으로써, 전형적인 High risk. High return 게임이다. 위험이 높은만큼 승리했을 경우 자신에게 돌아오는 수익 역시 크다. 게임에 참여하는 비용은 없다. 하지만 패했을 경우 신하균은 자신의 건강한 몸을 잃게 되고, 변희봉은 부의 일정 부분(30억)을 잃게 된다.

영화에서 신하균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돈이 너무 궁한 상태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지각능력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자 만일 신하균이 게임에 승리할 경우 신하균이 얻게 되는 수익은 많은 돈이다. 그에 반해 변희봉이 잃게 되는 위험은 자신의 재산중 극히 일부분인 금액정도이다.

반대로 변희봉이 게임에 승리할 경우 얻게 될 수익은 젊음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신하균이 잃게 되는 위험은 자신의 몸(수명)인 셈이다. 신하균의 경우만을 따로 떼어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image)

신하균이 예상할 수 있는 기대 수익보다  더욱 부담이 가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는 게임에 참여하는 셈이므로 패배할 경우 쪽박을 찰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덫붙여 따라오는 상실감까지 합친다면 예상되는 위험은 더욱 거대한 것이다.

(image)
이에 반해 변희봉의 경우 기대 수익이 예상 위험보다 휠씬 거대하다. 게임에 질 경우 자신 재산의 일부만을 신하균에게 넘겨주면 게임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하균의 경우 어떤 판단을 해야할까?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한 주체라면 아마도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하여, 위험으로부터 최소한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게임을 제안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즉, 비록 게임에 패해 자신의 몸을 잃을지라도 이를 보전할 수 있을 만큼의 무엇[각주:1]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게임에 참여했어야만 했다.

보다 쉬운 예를 하나 살펴보자. 삼성라이온즈의 야구팬인 나와 친구가 내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삼성이 이기는 쪽에 돈을 걸어야 할까? 아님 패하는 쪽에 돈을 걸어야 할까?

분명 패하는 쪽에 거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왜냐면 삼성이 승리하면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승리에 의한 만족감일테지만 반대로 패하는 경우 자신이 응원한 팀이 패함으로 느낄 수 있는 불만족에 대한 위험을 어느정도 상쇄시켜줄 수 있는 돈(내기에서 승리함으로써 얻게 되는 수익)으로 어느정도 감정적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하균과 변희봉의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신하균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위험을 회피할 대안없이 게임에 임한 것 자체가 위험을 헤지할 수단 없이 게임에 임한 어리석은 도박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와같은 위험충만한 게임을 두번씩이나  하게 된다.
(image)
신하균이 포스터에 카피처럼 일생일대의 인생을 건 최대의 도박에 참여하려고 했다면 적어도 발생가능한 위험에 대한 회피수단을 보다 꼼꼼히 고려해 두었어야만 했다. 그것이 게임에 진정 승리하는 길일테니 말이다.
  1. 극중에서는 여자친구의 빚을 탕감해주어 사채꾼들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게임에 참여한 것이므로 여자친구는 게임에 패하더라도 보호해주고 여자친구에게 바뀐몸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라는 항목을 포함시키는것 정도.(사실 몸뚱이가 바뀌었는데 여자친구를 보호해준들 소용은 없겠으나 몸을 빼앗기고 여자친구마저 빼앗기는 상실감은 기대 수익에 비해 너무 큰 위험임. [본문으로]



입소문 마케팅의 성공요소

Thu, 24 Jan 2008 01:55:21 +0900

가끔 입소문 마케팅은 돈이 많이 들지 않을 것 같아서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입소문이 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병원에 치료를 받고 온 친구녀석이 저녁식사 동안 쉴새 없이 의사에 대한 칭찬을 합니다. 이유인 즉, 보통의 의사와는 달리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친구의 병과 같은 질환에는 어떻게 대처를 했고 어떤 방식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정감있게 설명하더란 것이었죠. 질환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그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는 겁니다.

자, 오늘 저녁밥상에서 저에게 이루어졌던 이야기들은 내일이면 아마도 친구의 직장으로,메신져로, 휴대폰으로 퍼져나가 정이 있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 위한 행렬이 하나 둘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입소문에의한 전파는 나름대로의 필요한 성공요소가 있습니다.

1.상품이나 서비스의 질
2.화젯거리가 될 정도의 스토리
3.소비자가 만족할 수준이상의 흥미나 감동

먼저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우수해야 유리합니다. 그저 그런 상태의 상품이나 서비스질을 가지면서 널리 입소문이 퍼져나가기를  바란다는것은 도둑놈 심보겠지요.

두번째 화제거리가 될 정도의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일본의 한 백화점에 포도를 파는 농산물 코너에서 명절 특별판매용으로 상자에 포도를 포장에서 팔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한 소녀가 병석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위해 포도 한송이를 사러 왔지만 낱개 포장해서 팔 수 없다는 규정때문에 어느 직원도 선뜻 소녀에게 포도를 팔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직원이 소녀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고 상자를 뜯어내고 낱개로 포도 한송이를 포장해 판매 했다고 합니다.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포도와 어머니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블로그에 담아냈는데 이 훈훈한 백화점의 이야기가 함께 그려져 입소문을 타고 그 백화점의 과일코너는 일대 유명장소가 되어 엄청난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입소문에는 화제가 될만한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세번째 필요한 것은 흥미나 감동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감동이라는 것은 단순히 만족한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수준의 기대를 맞추는 만족 이상을 의미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정을 가진 의사와 입소문에서 볼수 있듯이 감동은 보통의 의사가 행하는 친절한 진료수준(만족)을 뛰어넘는 수준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소투자대비 최대효과를 얻어 내려는 입소문 마케팅은 이처럼 중요한 성공요소를 필요로 하는데,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집단은 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비자는 점점 똑똑해지고 진화해가고 있습니다. 이를 앞서가려면 두배 새배의 노력가지고는 턱도 없겠지요. 적어도 10배,20배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미락 분식점의 성공비결

Thu, 03 Jan 2008 00:06:48 +0900

회사 근처에 미락이라는 분식점이 하나 있습니다. 가게 바깥에서 보면 웬지 허름한 것이 일반 분식점의 평범한 모습입니다. 만두를 쪄내는 자판이 문앞에 있는 것을 보아 만두를 주력상품으로 하는 분식점이 틀림이 없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러간 이후 우리는 미락분식점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음식이 탁월하게 맛있거나 특별나지는  않지만 정갈하게 담겨진 밑반찬이 맛을 돋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이 후덕합니다. 볶음밥을 주문하면 아주머니는 얼굴 온가득 미소를 머금고 음식을 내어오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인분같은 2인분입니다."
(image)

실제로 음식양은 4인분에 해당하는 양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개업초기니깐 그렇겠지라고 생각한 것이 2번, 3번 갈때마다 아주머니의 넉넉함은 더해만 갑니다. 만두국을 주문하면 공기밥을 추가주문하지 않았음에도 슬쩍 한공기 퍼오셔서는 모자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이면 이상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 허름하고 보잘것 없는 분식점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행렬이 점점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변 음식점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뛰어난 인테리어나 고급스런 맛을 자랑하며 즐비한 음식점과 경쟁하는 미락분식점의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미락분식집의 영업전략을 살펴보자면 그 자체로는 손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왜냐면 2인분의 원가를 초월하는 4인분의 볶음밥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실속을 들여다 보면 미락분식집은 미락만의 브랜드구축과 확산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브랜드 구축이라 함은 분식집을 찾아주는 고객과의 '정서적 판로'입니다. 미락은 고객들에게 정서적으로 고향집을 찾은 듯한 '넉넉함''인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정서적 판로에 기인하는 신뢰만 구축되어 있다면 그것에 어떠한 물건을 얹어서 팔더라도 성공하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도 이러한 것입니다. 어떠한 서비스나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익은 절대 매출 빼기 원가가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는 그러합니다. 고객의 신뢰 곱하기 고객 수가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익의 원천이자 근본입니다. 소비자가 기다려서라도 그 가치를 얻고자 할 정도라면 마케팅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본의 물신성

Fri, 21 Dec 2007 02:10:32 +0900

모TV 프로그램중에 연예인의 집을 방문해 그집에 돈 될만한 물건들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는 코너가 있다. 시청자들이 꽤나 흥미있어하는 프로그램이다. 해당하는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소유한 물건이 그동안 과소평가되어 실제 가치가 그 이상으로 판정이라도 나버리면 하나같이 놀라운 표정들을 지어댄다. 그리고 이를 지상파로 뿌려대는 방송국은 호들갑스런 자막퍼레이드와 함께 물건의 가치를 액수로 표현하기에 분주하다.

과거 물물교환의 시대에는 상품 그자체가 가치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편리에 의해 만들어진 오늘날의 화폐는 그자체로 하나의 상품이면서 동시에 다른 상품들의 교환가치를 표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상품 > 화폐 > 자본의 방향으로 흘러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자본이 단순히 부의 상징에 그치지 않고 물질이 만능이 되고 권력을 생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자본가들이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 본래 사용가치가 없는 화폐를 축적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것이 자본의 물신성이다.

인간도 이런 양적 물신성에 지배를 받는다. 지하철에 등떠밀려 탑승하게 되는 사람들은 공익요원에게는 짐짝에 지나지 않고, 달달이 마감을 쳐내기 위해 보험가입자를 채워넣어야 하는 보험설계사에게 고객은 할당량에 채워져야할 머릿수에 지나지 않는다.

연예인들이 소장한 물건들이 화폐단위로 환산될때마다 물질의 본질은 훼손되고 오로지 양적인 개념이 앞서는 가치전도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화폐에 종속되지 않고 자본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물질을 앞서는 자신만의 가치척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물질에 지배되지 않는 가치관과 신념이 진정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든다.




대선 후보자들의 경제성장율 공약을 조롱하는 블로거에게

Thu, 04 Oct 2007 17:20:13 +0900

대학시절  어떤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학생 하나를 강단으로 불러내고선 이런 주문을 했다.
"지금 자네가 낼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제자리 멀리뛰기를 한번 해보게나."
그 학생은 힘껏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교수님은 학생이 착지한 지점에 분필로 표시를 한후 다시 그 학생에게 주문을 했다.

"자네 이번에 내가 제안하나를 하겠네. 만일 내가 그어놓은 이 선을 넘어선다면 내가 자네에게 이수업에 대한 최고학점을 주겠네. 한번 해보겠나? "
그 학생은 제안에 응했고 젓먹던 힘을 다해 뛰어 올랐고 결과는 놀랍게도 그 선을 뛰어넘은 곳에 착지해 있었다. 이와 같은 놀라운 마술은 어떻게 이루어진것일까? 분명 처음 그 학생은 자신이 낼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뛰어 올랐을텐데 두번째 더욱 향상된 기록을 낼수 있었던 셈이다. 최고학점을 주겠다는 인센티브가 학생에게 초인적인 힘을 불어 넣은 것일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목표이다. 목표의 설정은 그 목표를 향하는 마음가짐을 단련시키고 의지를 새롭게 한다. 또한 목표에 미처 닿지 못할지라도 이전보다 향상된 결과물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하는것도 이와같은 이유에 기인하는 것이다.


한 블로거가 대선 후보들의 경제성장률에 대한 공약을 두고 한국의 경제는 키의 성장을 멈춘 청년에 비유하며 조롱하고 있다. 심지어 멍청하다는 표현을 들어 비웃고 있다. 엉뚱한 희망을 버리지 못함을 한탄하고 있다. 공약은 지킬수 있는 약속이어야 함은 분명한 것이나 이 글을 쓴 블로거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목표 성장율의 이해에 대한 부분이다.

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 : 스물셋 청년의 키는 자라지 않는다.

물론 경제성장률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판단으로 후보들이 제시한 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예측을 할수도 있다. 그래서 남는것은 무엇인가. 목표에 닿지 못하더라도 목표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올바른 경제관을 가지고 후보들의 자질을 가늠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좀더 다른 방향으로 이들의 경제성장률에 대한 관점으로 분석해야 할것이다. 이를 테면 이들 후보들이 어떠한 경제관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으로 성장율을 달성하고자 하는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중시하는 미시적 관점인지. 성장과 균형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거시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말이다.

60이 넘은 노인은 분명 키는 커질수 없으나 연륜을 더해갈수는 있다. 자신의 인생앞에 새로운 목표의 선을 긋기에 아직은 충분한 나이이다.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한국의 경제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성장에 대한 갈망은 분명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생각

Fri, 21 Sep 2007 01:11:01 +0900

정부가 이르면 2009년부터 대체복무제 도입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18일 발표했다. 이에 종교계·시민사회단체·정치권·네티즌의 여론은 찬반으로 갈려져 열띤 공론의 장을 이루고 있다. 비단 이 문제는 최근에 활발하게 논의가 진행된 문제만은 아니다. 과거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존재했었고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관철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정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들의 선택은 '옥살이'를 감내하고서라도 신념을 고수해야만 하는 불리한 상황을 맞이하는 것 뿐이었다.

오늘날 또한번 이슈화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대해서 대학시절 후배와 열띤토론을 벌인적이 있었다. 우연히 책장을 정리하다가 그당시 메모했던 내용들을 토대로 재구성해보았다. 그당시의 나의 생각과 주장들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은 없는듯 하다.

# 두가지 법률적 해석의 충돌.
양심적 병역거부는 두가지 법리적 해석의 충돌이 존재한다. 헌법에 명시된 '사상의 자유','양심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하며 이를 구속할수 없다는 것(헌법 19조)과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종교계,시민단체,정치권,네티즌의 여론이 분분한것도 이 두가지 해석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전자를 중시하는 부류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환영하는 입장을 취학 후자에 비중을 두는 부류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부연하며 이를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6년전 후배와의 토론에서도 이와 같은 해석의 충돌이 있었으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후배의 생각 :
'사상의 자유'와 '병역의 의무'의 충돌시에 우선시 되어야 하는것이 의무이다. 한국가를 지탱하기 위한 법체계에서 의무를 먼저 다한 경우에 한해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하는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에 대한 실예로 만일 어떤 사람이 '살인하는 것이 자신의 정당한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에는 개인적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어 무죄 판결을 받아야 하는가? 국민으로써 마땅히 지켜야 하는 법질서의 준수 즉 의무를 다한 경우에 한해서만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생각에 대한 나의 반론 :
내가 주장하는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은 '사상의 공개적 경쟁' 즉 자유로운 사상들의 표현과 그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상을 선별적으로 선택하고 표현할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지 위에서 제시한 예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고 인권을 훼손하는 행동상의 자유(방종)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으로써 마땅히 지켜야할 의무를 회피하고자함이 아니고 그 의무에 준하는 다른 방식의 의무를 선택하고 이행할 권리를 요구하는것(대체복무제)이다. 그래서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강제적 병역이 아니라 사회적 봉사나 구호활동을 통해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고 군복무에 준하는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일각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관점의 차이('이단'이라는 표현), '정신이상자'(사상의 차이나 관념의차이)는 일단 배제해줄것을 요구하는것이고(개인의 양심은 신념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이것자체를 옳다 그르다 가치판단을 내릴수는 없다.) 사회적 박탈감과 소외(나는 군복무로 고생했는데 누구는 이것을 회피하려한다는식의 의식에서 오는)라는 문제는 형평성에 준하는 또다른 의무(사회봉사)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결론
항상 나의 생각이 옳고 정당한 것일수는 없다. 또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사상 역시 그것에 대해서 시비를 가려낼 성질의 것도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요체는 다수의 의견과 사상만을 쫓는 전제 정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직접적으로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사상의 자유로운 표현과 경쟁을 통한 선별적 사상의 수용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와 같은 문제 역시 모든 상황들을 제외시킨 가운데 '인권의 보호''사상의 자유''양심의 자유'라는 기본 골격만을 놓고 출발하고 접근할때에 비로소 발전적인 논의들이 오고 갈수 있는 것이다. 대체 복무제를 시행함으로써 발생할수 있는 부작용과 우려들은 그에 상응하는 정책들로 보완하여 형평성과 적합성을 유지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라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총을 쥐어주고 싶다면 혹은 사회봉사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아 군조직내에(집총하지 않는 군복무의 테두리) 범주에 그들을 가두고 싶다면 이제껏 진행되어온 발전적 논의들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꼴이 될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에 대한 개념정리부터 되짚어보고 다시 토론의 장으로 나와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