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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ON20 편집국원들의 시사/대학 전문 팀블로그입니다



Published: Tue, 31 May 2016 09:07:16 +0900

 



MB의 유일카드 FTA, 독잔이 되어 돌아오다

Thu, 19 Jun 2008 22:12:42 +0900

MB의 유일카드 FTA, 독잔이 되어 돌아오다   19일 오후 2시 이명박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대통령은 절대 30개월 이상 소고기는 막겠다며 지난날의 과오에 반성하는 뜻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그 동안 겉으론 멀쩡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이 순간만큼은 손바닥에 땀이 물대포마냥 터져 나왔을 것이다.  모두 대통령을 촛불세력의 배후로 의심할 정도로 이 대통령과 아이들은 불붙은 민심에 부채질과 기름질만 더 했었다. 이쯤이면 그만 하고 뭔가 내놓을 때도 됐는데, 협상은 협상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답답하기만 하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대로 정말 이명박 대통령은 돌+아이인 것일까? 사실 이명박은 국민적 왕따를 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서로 잘한 짓이라고 칭찬하느라 바빴다는 바로 그 ‘FTA’ 때문이다.   그 놈의 FTA... MB노믹스 유일 해답의 적색경보  소고기수입은 미국과 평등한 선상에서 FTA협상을 하기 위해 사전에 미국에 조공으로 바쳤던 사안이었다. FTA 관문을 위한 티켓비용이라고나 할까? 암튼, 문제는 이 티켓을 2년 전쯤에 정부가 몰래 사뒀던 것인데 금년 4월에 일반석(30개월이상NO/뼈조각NO)을 VIP석(30개월이상YES/곱창까지OK)으로 교체하면서 그 폭발적인 효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아, MB의 최대수난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떻게 당선되었는가. 청계천 만들었듯이 자신의 전지전능한 파워로 국민경제 다시 일으키겠다고 ‘경제대통령’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당선되었다. 그때 당선되자마자 말했던 것은 ‘분배보다 성장을 중심으로 경제를 살리겠다’‘747정책’‘한반도대운하’ 등등 경제 말곤 없다. 이명박은 경제를 빼면 시체다.    경제 빼면 시체인 MB '까딱 잘못하단 좀비될지도...‘  소고기까지 포기하며 지금까지 달려왔던 이유는 FTA를 비준시키기 위함이었다. 다른 거 다 포기하고 자동차 얻어내고, 섬유 조금 얻어내서 경제를 성장시키고자 지금까지 달려왔었다. 지금도 이 난국에 지하철을 타면 FTA광고가 버젓이 붙어있다. FTA야 말로 국민경제의 희망, 너도나도 잘사는 방법이자 늘 말하고 다녔던 “여러분도 이 이명박이처럼 부자 될 수 있습니다”를 실현시켜줄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무엇보다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체감경제가 아닌 경제지표다. 이명박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눈으로 봤을 때 경제성장률이 올라가고, 대기업이 더욱 이익을 창출해 내는 것, 수출·수입이 급상승하는 것이다. 747을 빨리 이루기 위해선 어서어서 FTA를 통과해서 아웃풋을 뽑아 내야한다.(이미 747을 지지율 7.47로 실현시켰다곤 하지만...암튼) 서민들이 진짜 원하는 내수경제와는  이명박 대통령은 FTA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제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남은 임기 4년 8개월 동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완전 새될 수도 있다. 노무현을 밟고 “도덕적이지만 무능력한 아빠보단 비리가 있어도 능력 있는 아빠가 좋다”라는 말로 FTA가 절대선임을 주장해왔는데, 까딱하다간 작년 BBK때처럼 ‘국가적 사기꾼’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미국의 자동차공갈협박단과 무난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이명박 대통령은 “FTA진행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며 국민들에게 저번과 같이 ‘국가이익을 위해서 이해해 달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0여 [...]



촛불 정국 50일, 5년 동안 잊지 말고 가야할 것

Thu, 19 Jun 2008 19:13:07 +0900

이명박의 경제와 우리들의 경제!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를 시작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점점 의료.공기업 민영화, 공교육 개혁 그리고 대운하 건설 등에 대한 불안감으로 확산되고 있다. 거리의 성난 민심도 더 이상 쇠고기수입협상 정리 차원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현 정권과 함께 시작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대통령 선거 마지막까지 그의 발목을 붙잡았던 그의 도덕성과 기업에서나 통할 것이라는 불도저식 경영방법조차도, 청계천복원사업과 버스전용차로로 대표되는 그의 화려한 전력과 함께 국민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이 보다 빠른 경제성장의 길로 다가설 수 있을거라는 기대심을 갖도록 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 우리는 국민이 기대하고 있는 경제 성장과 그가 말해왔던 경제 성장이 너무나 다른 차원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서민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제 자리고, 배 부른 자들은 이제 소화시킬 시간조차 부족하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겐 건너가야 할 산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다.   의료민영화-공기업민영화는 괴담일 뿐이다?    마이클 무어의 ‘식코’는 미국의 의료민영화 정책으로 벌어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의료서비스의 실태들을 기록한 다큐 영화다. 영화는 의료민영화정책이 갖고 가는 소리없는 폭력성을 고발한다. 환자를 보호해야 할 병원은 다 죽어가는 환자들을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런 조치 없이 거리로 내몬다. 의도치 않은 ‘살인’과 기업의 이익에 치여 죽어가는 환자들의 죽음을 방관하는 사회, 바로 의료민영화가 진행 중인 미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먼 나라 미국에만 한정지을 수 없는 문제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다. 며칠 전 제주도 영리 법인 설립을 허용하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일부 해지한다는 정부 방침이 결정됐다. 결단코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던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에 이미 시동이 걸린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공기업 민영화 역시 국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으리라 예상했던 이명박 정부의 주요 경제계획 중 하나였다. 정부의 민영화 정책은 공기업의 비효율성에 근거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민영화’에서만 찾으려 하는 정부의 발상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리다. 정부가 아닌 기업이 민영화로 인해 공기업 경영을 맡게 되면 이들은 기업의 최우선적 목표인 ‘이익’을 추구해야만 한다. 결국 기업의 목적은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기업은 이익을 남겨야만 살아남는다. 의료,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려는 사람들의 이유는 그래서 간단 명료하다.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손해가 너무나도 빤하기 때문이다. 보다 확실한 이유는 기업의 이익과 맞바꿔 감당해야 할 고통은 모두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행복 추구권’   정부가 정권초기부터 추진하고 있는 공교육 개혁. 이제 서울에는 10시에 학원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간수업시간규제가 없는 경기권 학원으로 넘어가 새벽 수업을 받는 중고등학생들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학생들은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 4시간 밖에 잠을 자지 않는다. 부족[...]



비운동권 총학생회의 촛불집회 참여를 말하다

Tue, 17 Jun 2008 16:14:19 +0900

 5월 29일 고시가 강행된 이후 서울시청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주최 측 추산 약 10만의 시민이 모여서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시를 강행한 이명박정부에 대한 불신의 촛불을 들었다. 이 날 촛불집회가 달랐던 점은 규모면에서만 아니라 그동안 조용하고 있던 학생단체들의 깃발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에 있다. 그 중에서도 놀라웠던 것은 여태까지 비운동권 총학생회를 표방했던 몇몇 총학생회들의 깃발을 집회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광우병사태 때문에 스타가 된 고려대 총학  각종 포털에 ‘고려대 총회장 정수환’을 검색하면 그와 관련된 글이 많이 찾을 수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은 ‘비권’이면서도 집회에 참가하였고, 참가과정 중에 총학생회 정·부회장 둘 다 연행될 만큼 적극적인 참여를 했었다. 이뿐만 아니라 단과대 학생회장과 면회를 하면서 동맹휴업을 발의한 고대 총회장의 ‘옥중발의안’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며 미담으로 남고 있다. 사실 고려대 총학생회가 학생시위를 주도하거나, 사회문제에 대한 학내여론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학우들과 열려있는 모습을 보여준 고려대 총학이 대외활동에 소홀히 하고 있는 타 비운동권 학생단체들에 주는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다. 고려대 총회장 정수환씨는 ON20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정부의 다른 사안들(의료보험 민영화와 같은)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학우들의 여론수렴이 중요하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총학이 얘기하기 전에 우선 학우들과 여론수렴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한바 있다. 국민대, 경희대, 용인대... ‘집회 비참여 총학’의 이야기 ‘와~ 정말 한가해보여요’ -경희대 1인‘총학이 포퓰리즘에 젖어 (축제처럼)보기 좋은 행사만 하고, 민생에는 신경 안쓰는 국회의원과 다를 것이 뭐가 있을까요?’ - 국민대 1인‘총학이 광우병서명용지를 찢어버리는 게 말이나 됩니까?’ -용인대 1인  시끄러운 학내 여론 때문에 몇몇 집회 비참여 총학들은 집회를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성명서에도 어김없이 달려있는 수많은 댓글들은 총학의 미지근한 태도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국민대의 경우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집회참여여부에 대한 서명을 받았다. 이에 국민대 학생들은 ‘집회가 위험하면 총학생회가 피하는 것이 맞는가. 참여해서 학우들을 보호해도 모자를 판에, 의견도 무시하고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비겁하지 않는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총학생회의 성명서가 발표되고 며칠 동안 총학생회 홈페이지 접속에 문제가 있어 학생들의 불만은 극에 달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부총학생회장 탄핵이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다. 국민대 총학의 집회출석체크서명용지  용인대에서는 광우병반대운동을 하고자하는 동아리와 총학생회 사이에 엄청난 마찰이 있었다. 지난 5월 23일 용인대에서 중앙동아리 흙사랑에서 받고 있는 광우병반대서명용지를 총학생회장과 일부 동아리연합회 간부들이 뺏고 찢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김태훈 용인대 총회장은 여론이 나빠지니 6일 뒤 학내 게시판에 ‘동아리연합의 허락을 안 받고 했던 서명이어서, 그리고 학우들의 개인정보유출을 막아야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것 같다. 진심으로 미[...]



20대 “촛불서 ‘희망’을, 현장서 ‘진실’을” 찾다

Sun, 15 Jun 2008 14:47:51 +0900

대한민국도, 20대도, 뜨겁다!   지난 6월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쏟아져 나온 100만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고, 연이어 국민대책위는 “정부가 미국과의 전면 재협상을 하지 않는 이상 촛불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불평’, ‘불만’을 넘어버린 국민들의 ‘분노’는 거리에서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학문의 상아탑이 아닌, 상업화에 기반한 취업준비학원으로 변해버린 대학가의 학생들도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거리로 뛰쳐 나왔다. 그들은 끝까지 평화시위를 사수하며 새벽을 맞았고, 그 과정에서 수 명이 부상, 수 십 명이 연행 되기도 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씨가 “20대는 ‘광장’을 사용하는 법을 잘 모른다”고 말했지만 2008년 6월, 거리에서 만난 20대들은 확연히 다른, 혹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특히 각 학교의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나온 학생들보다, 삼삼오오 무리를 짓거나 혼자 촛불을 들고 나온 20대들이 집회 구성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정치적 회의주의와, 고정관념 속에 갇혀있던 ‘20대’   서울에만 70만 명이 모였다는 지난 10일, ON20는 ‘광우병쇠고기 수입사태’로 처음 집회를 찾았다는 대학생들을 직접 만나봤다. 친구들과 함께 거리에 나온 건국대 이씨(23)는 “그 동안은 나에게 직접 닥친 일이 아니라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대학생들이 사회적 문제에 임해왔던 소극적인 모습에 동의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서씨(26)는 “사회 문제들을 외면해왔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권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는데 이는 그 동안 거리로 나오지 않았던 20대 다수가 “집회에 나가도 특별히 변할게 없을 것”이라고 말하던 회의적인 목소리와도 일맥상통하다.   이렇게 20대들을 지배하는 정치적 회의주의는 ‘정치’라는 말 자체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으로부터 시작된다. 실제,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정치’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대학생 김씨(22)는 “정치는 늘 근거 없는 비판이 난무하고 사건의 본질에서 어긋나는 얘기만 할 뿐, 자기들 ‘이익 챙기기’만 급급하다”며 정치에 대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20대는 정치를 “어른들의 일” “거짓말” “이념싸움” “싸우기만 하고 정책연구는 없는” “부르주아만을 위한” 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들을 갖고 있었다. 이는 20대가 ‘정치적 회의주의’와 함께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그들만의 권력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식들이 고치 돼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20대는 언론을 통해서만 목격했던 ‘정치’(어찌 보면 ‘국회’)의 고정관념 속에 각자의 목소리들을 가둬 왔던 것 같다. 일부 학생들은 실제 “지금 자신의 집회 참여가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다.    “촛불에서 ‘희망’을, 현장에서 ‘진실’을 찾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20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에 대한 회의 속에서도 지금의 상황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정치, 사회적 문제가 더 이상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닌,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대입준비생 정씨(22)는 “옛날엔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치가 나와 너무 가까운 공기” 같다며 “여태껏 20대들이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외면해왔지[...]



효순이·미선이를 기억해야하는 이유

Thu, 05 Jun 2008 01:27:50 +0900

촛불의 시작, 효순이·미선이를 기억하세요? ⓒ민중의소리 수만 개의 촛불이 뜨겁게 시청을 달구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반대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촛불은 비가 와도, 탄압이 심해져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촛불 속에서 과거를 기억한다. 20대들은 2002년 월드컵과 여중생사망사건을, 30·40대들은 87년 6월 항쟁을, 그리고 그 윗세대들은 4·19를 기억한다. 국민의 힘으로 역사를 다시 쓰던 과거의 모습을 지금의 광우병집회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건 언제부터였을까? 시작은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집회였다. 그 때의 촛불은 월드컵열풍에 묻혔던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한 가슴 아픔과 11월 가해자 미군병사가 무죄판결을 받은 것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었다.  사람들은 효순이·미선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집회현장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효순이·미선이를 광우병과 동등한 선상에서 기억하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몇몇 20대들은 ‘잘 기억이 안난다’ 혹은 ‘효순이·미선이 문제는 광우병문제만큼 급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집회와 이 집회는 성격이 다르지 않나’라는 말을 했다. 또한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것은 어쩔 수 일 아니냐’면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촛불집회 근처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세워져 있던 촛불기념비가 있었다면 사람들은 여중생사건을 조금이라도 기억했을까? 다들 알다시피 국민성금을 통해 효순이·미선이 1주기 때  효순이·미선이 촛불기념비를 세워놨었다. 한 달 후 누군가 기념비를 훼손해서 다시 제작했고, 2004년 말에는 불법적치물이라는 이유로 종로구청에서 강제철거를 하고 압수해버렸다. 그 뒤 행방이 묘연해진 촛불기념비가 청운공원 뒤 야산에 버려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ON20는 청운공원으로 갔었다. 그러나 관리자는 ‘구청에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열람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존재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촛불기념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 돌덩어리에서 효순이·미순이사건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효순이·미선이를 잊어버리면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 ⓒ민중의소리 지은씨(21)는 2002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당시 여중생추모집회에 참가했었다. 인터넷에서 본 동갑내기 두 여중생의 죽음이 너무 처참했고, 이 모든 게 불평등한 한국과 미국관계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도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와 학생참여를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당시 촛불집회를 회상하면서 “우리나라는 왜 이러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시대에나 있던 치외법권에 이어서 미국한테 또 이럴까하면서 정말 답답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효순이·미선이의 문제를 해결하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의 고유경 사무국장은 “광우병집회와 여중생집회의 공통점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광우병의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군범죄 때문에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고 말했다. 비록 그 가능성을 알게 된 대가는 컸지만, [...]



20대를 지배하는 IMF, '기억의 공포'

Wed, 04 Jun 2008 17:51:18 +0900

97년 대한민국의 겨울은 국민들에게 ‘IMF 위기’라는 혹독한 추위를 안겨주었다. 외부적으로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돌입하며 아시아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부적 경제 상황은 외환보유고 관리 실패와 전체 채무의 50%를 넘어선 단기 외채의 급증으로 파산 직전의 상태였다. 97년부터 시작된 국내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붕괴도 외국이 국내에 투자된 자본을 회수에 가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결국 정부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를 해결키 위해 IMF(국제금융기구)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IMF가 닥쳤던 97년 11월 한 달 동안 실업률 증가폭이 15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12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1998년 자살율 역시 전년도인 6022명보다 42.3%(2547명)나 급증했다. 실제로 2007년 MBC 스페셜에서 방영된 ‘그 배는 어디로 갔나’에서는 충청은행 강제 퇴출자 9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85.9%가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당시 IMF는 우리나라 빈민층의 구성이 외환위기 전인 15.7%에서 최고 28.7%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키도 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IMF, 그 위기가  국민들의 목을 무겁게 옥죄어 오던 그 때를, 지금의 20대는 과연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1997년 IMF, 20대들의 기억 “저희 아빤 공무원이라 괜찮으셨지만 친구들 중엔 그 때 돈이 없어서 급식을 못 먹는 애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선생님께 말해서 그 아일 도와줬던 기억이 나요.” –손00 23 - “어렸을 땐 막연하게 비정규직이 되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는 괜찮으셨는데, 그 주변에 비정규 직이셨던 분들이 IMF 때 다 정리해고를 당하셨거든요.” –박00. 26- “그 때 학교에서 무슨 설문 조사를 했는데, ‘아빠가 회사를 안 다니고 있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40명 중에 한 10명 정도가 손을 들었던 것 같아요.” –이00 20- 20대들이 근 10년 전의 경험을 이렇게 공유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당시의 기억들이 이들에게 지우지 못한 경험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친구들이나 언론을 통한 간접적인 영향보다 더 직접적인 경험으로 IMF의 어려움을 기억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IMF이후로 아버지가 줄곧 일을 구하지 못하셨어요. 대학도, 누나가 자기 꿈 포기해가면서 보내 준 거라, 그 생각하면 제가 어떻게든 꼭 성공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신00 21- “아버지가 철강회사를 다녔는데 IMF때 거기가 완전 부도가 났거든요.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쓰러지셨던 기억이 나요. 어린 마음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진 게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원망도 많이 했죠." –심 00. 23. - 20대를 지배하는 IMF의 흔적 어린 시절 겪은 IMF의 경험은 이렇게 직, 간접적으로 20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런 기억들은 20대에게 IMF위기라는 국가적 위험 속에서도 여유롭게 살아남은 자들과 벼랑 끝까지 내몰리게 된 자들이 극단으로 나뉘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강행된 구조조정 속에서 낙오된 가장들은 무능력한 죄인처럼 움츠려 들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능력 있는 가장으로 인정받았던 현실을 지켜봤던 20대. 당시 전남대 의과대학 최영 교수는 "가정 불안 최대의 원인은 가장의 실업이며, 그로 인한 가정 불화와 폭력, 이혼이 증가했다. 더불어 부모의[...]



부산지역 대학생, ‘이명박은 F학점’

Tue, 03 Jun 2008 10:54:13 +0900

부산지역 대학생, ‘이명박은 F학점’학사경고에서 퇴학조치로 번질 수도 있어 부산지역 대학생을 상대로 대한 설문조사한 결과, 83%에 달하는 학생들이 이명박 정부에게 학사경고에 해당하는 F, D학점을 줬다. 학생들이 점수를 준 결과는 ‘경고’에 그치지 않고 4일 동맹휴업을 시작으로 부산지역 대학생들은 본격적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행동에 돌입한다. 지난 2일, 부산지역 대학생이 동맹휴업 선포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부산지역 대학생 연합은 부산대를 비롯, 9개 대학 1262명의 부산지역대학생을 대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설문조사기간 5월24일 - 28일) ‘이명박 정부에 학점을 준다면 몇 점을 주겠느냐’ 는 질문에 F학점 721명, D학점 326명으로 참여인원의 83%가 이명박 정부에게 낙제점을 줬다. F, D학점은 대학 평점에서 학사경고에 해당하는 것으로 두세 번 학사경고를 받게 되면 해당 학생은 퇴학조치 된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총학생회장단은 “이명박 정부는 지금 당장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며 “그렇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 임을 경고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20% 초반까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가장 부족한 부분은 국민여론수렴실패와 이명박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국정운영능력의 실패로 인식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산쇠고기 수입으로 시작된 촛불문화제가 국민적 저항으로 확대된 것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능력보족으로 확대된 것이라 보고 있었고 버시바우 주한미대사의 내정간섭 발언 지적과 함께 미국의 압력과 대미 종속적 관계 때문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주요한 사안인 남북관계는 북미간의 관계가 개선되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인 태도보다는 화해와 협력으로 민족적 이익을 우선해야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고, 4월 있었던 한미정상회담, 한일정상회담 등의 외교정책과 경제 정책의 핵심적인 민영화 부분에서도 90%넘는 대학생들이 부정적 시각이었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시작된 촛불문화제가 현재는 반이명박 투쟁으로 확대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 협상 전면재검토를 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는 학사경고 누적으로 퇴학조치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대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운동권 총학생회의 촛불집회 참여를 말하다  (45) 2008.06.17 부산지역 대학생, ‘이명박은 F학점’  (0) 2008.06.03 이명박 모교에서도 외면 받는다?  (24) 2008.06.02 이대, 학생들 막으려 학교에 경찰까지 들어와  (182) 2008.05.31 이대생들, 학내 상업 시설 '우리도 비호감'  (67) 2008.05.27 성대 축제비용 ‘1억 원’ 넘을 듯  (191) 2008.05.09 [...]



이명박 모교에서도 외면 받는다?

Mon, 02 Jun 2008 20:05:35 +0900

이명박 모교에서도 외면 받는다?
고려대, 미국산 쇠고기 반대 동맹휴업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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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부산지역 4개 대학 동맹휴업을 발표한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동맹휴업 찬반투표를 결정해 대학가가 술렁이고 있다. 2일, 고려대 중앙운영위원회(총학생회장단과 단과대학생회장으로 구성된 의사결정기구)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총투표를 진행해 6월 10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동맹휴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정태호(고대 정경대 학생회장)씨는 “현재 강북경찰서에 연행되어 있는 총학생회장과 면회를 진행했다”며  “그 자리에서 총투표 논의했고 돌아와 임시 중앙운영위원회를 열려서 총투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1일 새벽 7시, 정수환 고려대 총학생회장(전전전, 05학번)과 박종찬 부총학생회장은 미국산 쇠고기반대 시위 도중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현재 그들은 강북 경찰서에 구금된 상태다.

고려대 대안언론모임 고담CT에 따르면, 이번 동맹휴업 총투표는 현재 강북 경찰서에 구금돼 있는 정수환씨의 단독 발의로 성사됐다. 긴급 시 총학생회장 단독 발의로 총투표를 실시 할 수 있다는 학생회칙에 따른 것.

총학생회장 발의가 있은 직후 고려대학교 각 학생회 대표자들은 임시 중앙운영위원회를 열어 동맹휴업 총투표를 결정한 것이다.

동맹휴업 결정은 총투표 결과 투표율 50%에 과반수 찬성에 의해 결정되며 4일과 5일에 투표율이 넘지 못할 경우 9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동맹휴업이 결정될 경우 10일부터 동맹휴업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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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부경대·부산교대·동의대 등 부산지역 4개 대학은 4일 동맹휴업을 벌이기로 2일 결정한 바 있다. 서울대 역시 촛불시위에서 경찰 군홧발에 짓밟힌 여학생이 서울대 음대생으로 밝혀지며 동맹휴업 찬성 여론이 급등하고 있다. 조선대와 전남대도 2, 3일 각각 대책회의를 열고 동맹휴업 실시 여부를 논의한다. 또한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에서는 집중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3일과 5일 휴강을 알리는 교수들의 공지가 이어지고 있다.

87년 6월, 서울 시내를 뜨겁게 달궜던 대학생들이 20여년이 지난 2008년 6월에 다시 일어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여론은 5월 말을 넘어 6월에 들어서면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다시 현실이 된 광주의 악몽

Sun, 01 Jun 2008 12:40: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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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예상대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embed) 촛불문화제를 끝내고 거리 행진을 시작한 후 시민들은 여러갈래 길을 통해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거리행진을 하던 시민들은 11시가 되기 전 정부종합청사 앞 청와대 가는 입구와 안국동 쪽 경복궁 앞으로 모였습니다.

경찰은 경찰자로 길목을 완전히 봉쇄했습니다.
시민들이 경찰차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경찰차를 흔들자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가했습니다.

새벽 4시가 넘어서부터는 기습적으로 시민들을 몰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런 몰이에 당황한 시민들이 넘어지기도 하고, 경찰 방패에 찍히기도 해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고 연행되었습니다.

물대포를 앞세우고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으로 경찰은 제가 현장에 있던 7시경까지 정부종합 청사 앞에서 안국동까지 밀어붙혔습니다.


더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6월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퍼가셔도 됩니다.

왼맘잡이 leftheater@on20.net
 



이대, 학생들 막으려 학교에 경찰까지 들어와

Sat, 31 May 2008 10:41:26 +0900

5월 31일 이화여자대학교 창립 122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학생과 학교측 갈등 극화이화여대 총학생회는 '등록금 동결, ECC 상업화 반대, 학생 자치권 탄압 반대, 학교-학생 운영위원회 건설, 교육환경 개선'의 다섯가지 요구안을 통해 학교와 학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학교측이 총학생회를 인정하지 않고 학생측이 제시하는 대화를 계속 거부해왔다. 학생대표들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총학생회장 단식, 부총학생회장과 간호대 공동대표의 고공농성을 진행해왔다.학생대표들이 학교의 회유책, 협박에도 굴하지 않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오늘 122주년 행사에 이화여대에 안좋은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학교측은 어제 저녁부터 교직원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학교 내엔 사복경찰 수십명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언제 처들어 올지 모르는 사복경찰들을 보며 두려움에 밤을 지샜다.오늘 오전 학교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화여대 학생들이 행사장 근처로 행진을 시작하자 교직원들과 경찰들은 계단위에서 인간바리게이트를 치고 학생들을 막기 시작했다. 계단 위에서 행사장으로 진입하려는 학생들을 경찰과 교직원들이 밀치는 과정에서 위험한 사고가 날뻔하기도 했다.계단위를 막고 행사장을 지키려는 경찰기자회견을 마치고 행사장으로 가려는 학생들학생-학교/경찰 마찰18일째 단식중인 총학생회장(보라색옷)학교탐방왔다가 이화여대의 두모습을 보고간 중고등학생들학교측과 경찰은 행사장 진입을 못하게 했다. 이에 학생들이 지나가는 학생들과 행사참가자들에게 큰소리로 이사실을 알리자 사복경찰들은 학생들의 뒤도 막았다. 앞뒤로 교직원/경찰들에게 갇힌 학생들. 이건 학생들의 목소리를 막으려는 이대의 추태였다.다른 길로 행사장에 가려고 뛰어가는 학생들을 끌고와 땅에 내팽개친 사복경찰약 9시 반부터 시작된 학교의 강경한 태도는 기사를 올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경찰과의 마찰 중 일반 시민 2명이 연행됐다.*학교 관계자는 학생회가 막고서서 행사가 지연되고 있으니 다른길로 가라는 거짓말을 행사참가자들에게 말했다.* 12시 현재 4대의 경찰자가 추가로 들어온 상태며, 경찰은 이화여대 본관과 포스코관의 진입을 막고 있다. 또 학생들의 나눠주는 유인물을 가진 사람들의 출입을 막거나 소지품 검사를 하고 있다. * 여대임에도 불구하고 여경이 배치돼 있지 않고 있어 밀고 당기는 대치 중에 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지역 대학생, ‘이명박은 F학점’  (0) 2008.06.03 이명박 모교에서도 외면 받는다?  (24) 2008.06.02 이대, 학생들 막으려 학교에 경찰까지 들어와  (182) 2008.05.31 이대생들, 학내 상업 시설 '우리도 비호감'  (67) 2008.05.27 성대 축제비용 ‘1억 원’ 넘을 듯  (191) 2008.05.09 알바 해도 생활비만 겨우 버는 대딩들.  (7) 2008.05.07 [...]